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특별탐사기획]

운영자 ( 2020.06.08) , 조회수 : 754       ▶▶ 세계일보 (바로가기)

1회 이미 온 미래



◆자리잡은 '언택트’… 노동의 종말을 고하다


일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일자리가 없어 할 일이 사라지는 세상이 됐다. '언택트’, 리모트 퍼스트, 자동화, 4차 산업혁명….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던 세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했던 기술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을 앞세워 서비스업은 물론 지식노동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 노동은 파편화하고, 전통적 일자리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또는 일자리)은 그동안 얼마나 사라졌고, 또 앞으로 얼마나 사라질까. 코로나19의 '늪’을 벗어나면 사라진 일자리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48만명 줄었다. 코로나19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년 동기가 아니라 코로나19 전과 후로 비교하면 3∼4월 두 달간 무려 102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일자리를 크게 줄인 가장 최근의 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아시아, 유럽으로 빠르게 번졌다. 세계일보가 31일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의 여파가 이어진 2008∼2010년 취업자 수는 11만3000명 줄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일자리가 계속 늘어 2018년에는 10년 전보다 287만명 많아졌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취업난도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다시 금융위기 때로 눈을 돌려보자. 통계청의 '직업별 취업자 수’ 자료를 보면 147개 직업(소분류 기준) 중에서 금융위기 기간(2008∼2010년) 일자리가 줄어든 직업은 49개다. 위기가 지나가고 전체 일자리가 287만개 늘어나는 사이 이 49개 직업에서는 일자리가 84만개 줄었다. 사라진 일자리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직업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보고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경기 침체기(1970·1975·1982년)와 최근 침체기(1991·2001·2009년)를 비교했더니 두 경우 모두 반복·단순작업 위주로 일자리가 줄었다. 하지만 차이는 분명했다. 과거에는 경기가 살아나면 다시 일자리가 회복됐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했다. 위기가 닥치면 기업들이 사람 대신 자동화 기계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도 상점판매원, 자동조립라인 조작원, 목제품 제조 종사원, 제조 관련 단순 종사원 등의 일자리 감소폭이 컸다. 코로나19는 이런 추세에 더해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터졌다.


누구도 내 직업이 30년 뒤 온전하리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첫 출발은 비대면 산업에서 이미 시작됐다. 코로나19가 방아쇠를 당긴 '언택트’ 문화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자리의 미래를 '비대면의 하루’로 풀어봤다.



◆'슬기로운 비대면 생활’?


오전 8시40분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회사까지는 아직 두 정거장 남았고, 지하철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9시까지 출근하긴 힘들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 잠기운을 몰아내지 못한 몸에서는 '카페인 수혈’을 외친다.


스마트폰 주문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광화문역과 가까운 커피 매장을 찾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결제했다. 걸음을 재촉하며 매장에 가니 이미 커피가 나와 있다. 9.9㎡(3평)이나 될까 싶은 작은 매장 앞에는 키오스크 두 대가 나란히 서 있고, 점원은 다른 주문을 처리하는지 매장 안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분주한 아침 시간이 지나고 점심을 먹으러 로봇 서빙으로 유명한 퓨전 이탈리안 레스토랑(메리고키친)을 찾았다. 널찍한 매장에서는 로봇 '딜리’가 묵묵히 음식을 나르고 있다. 딜리의 역할은 주방에서 음식을 받아 테이블까지 가져오는 것. 주문을 받는 직원은 없다. 테이블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스마트폰에 메뉴가 뜨는데 일반 주문 앱처럼 음식을 골라 결제하면 된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모노레일을 타고 물과 숟가락, 포크가 전달됐다. 총 64명이 앉을 수 있는 매장에는 '사람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매장을 나설 때까지 마주할 일은 없었다.


“원래는 조리과정을 제외하고 완전 무인매장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오픈하려고 보니 조리된 음식을 로봇에 옮길 때나 먹고 난 그릇을 치울 때 어쩔 수 없이 사람 손이 필요하더라고요. 손님이 식사 도중 물이나 냅킨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로봇에 추가기능을 넣으면 되지만, 그러면 로봇 단가가 올라가죠.”


딜리를 운영하는 김민수 배달의민족 로봇사업팀장의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생 3명을 고용했다. 하지만 한 달 운영해 보니 1명으로도 충분했다. 그마저도 저녁에는 퇴근하고 딜리 혼자 홀을 책임진다.


후식으로 로봇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러 갔다. 키오스크로 드립 커피를 주문하니 로봇 '카페맨’이 각기춤을 추듯 절도 있게 팔을 휘두르며 잔을 나르고, 그라인딩된 커피를 받아 주전자의 온도를 맞춰 반시계방향으로 물을 붓는다. 카페맨의 레시피는 실제 유명 바리스타의 것으로 프로그래밍됐다. 카페맨을 만든 이선우 에일리언 대표는 “카페는 8시간 이상 문을 여니까 최소 2명은 고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카페맨은 알바생 2명의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회사로 들어오니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 취재차 자리를 비운 팀원들이 약속된 시간에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들어왔다. '원격으로 진지한 회의가 가능할까’란 우려와 달리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대화 내용을 받아쓰는 인공지능(AI) 비서가 '아마 여기 동의라고 해놓은 데’를 '엄마 여기 똥이라고 해놨는데’로 적는 어처구니없는 오타를 종종 내곤 했는데, '부장님 개그’보다는 참신한 재미가 있었다.


퇴근길에 요리 로봇이 있는 치킨집 1호기(1호점이 아니라)에 들렀다. 역시나 키오스크로 주문하자 지휘봉 같은 막대가 달린 로봇이 통에 든 닭고기를 굴리며 튀김옷을 입힌다. 그 옆에 있던 '동료’ 로봇이 하얀 반죽을 마친 닭고기를 넘겨받아 튀김기에 넣는다. 닭이 타지 않도록 중간에 튀김 통을 탁탁 튕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사이 첫 번째 로봇은 사용한 통을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놓았다. 이곳은 개발사인 로보아르테의 사무실도 겸하고 있어 대표를 빼고도 3명이 일한다. 하지만 2호기부터는 1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연내 2호기가 문을 여는데 직원은 2명 아니면 1명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닭을 통에 넣고, 조리된 닭을 포장하는 정도만 사람이 하도록요. 그렇다 보니 로봇이 사람 일자리를 뺏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려고 개발한 건 아니고, 은퇴 후 1인 창업하는 분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어 시작한 거예요. 물론 인건비를 줄이고 싶어 연락주시는 사장님이 많긴 해요.”(강지영 대표)



◆로봇, 공장 밖으로 나오다



로봇은 반세기 전부터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해 왔다. 주로 공장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정확하게 부품을 조립하는 게 임무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로봇이 공장 밖 서비스 영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서빙로봇, 바리스타로봇, 조리로봇은 모두 '서비스로봇’이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전 세계 서비스로봇 판매량은 매년 50% 이상 늘고 있는데, 산업용 로봇 성장률(15% 안팎)보다 훨씬 빠른 증가세다.


로봇공학을 전공한 이선우 대표는 “산업용 로봇은 이미 대기업과 거대자본이 들어와 스타트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며 “(하지만 서비스로봇은) 최근 인건비가 계속 오르면서 시장에서 지속해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에일리언은 조만간 수서에 완전 무인매장을 열고 조리로봇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상황에 따라 알아서 움직이는 AI로봇으로 진화시킬 계획도 있다. 배달의민족도 4월 말 현재 16곳에 배치된 23대의 딜리를 연말까지 300대로 늘리기로 했다. 매장 입구에서 손님을 맞아 자리로 안내해 기본 식기를 세팅하는 '접객로봇’과 조리로봇도 개발 중이다.


조리로봇과 서빙로봇 등에 해당하는 일자리(조리 및 음식서비스직)에는 지난해 기준으로 130만명이 근무 중이다. 각종 판매활동을 업(매장판매종사자, 판매 관련 단순종사자)으로 삼는 이들도 210만명이나 된다. 로봇과 '가성비 경쟁’에 밀리면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일자리다.


물론 새로 생기는 직업도 있다. 서빙 직원 3명을 1명으로 줄인 메리고키친의 사례를 단순 적용하면, 딜리가 300대로 늘 경우 취업자는 900명에서 300명으로 준다. 지금은 로봇사업팀원 9명이 판매부터 유지보수까지 전부 담당하지만, 딜리가 늘어나면 유지보수하는 인력을 따로 둘 계획이다. 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선 것은 아니지만 50대당 1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300대를 기준으로 6명분의 새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서비스직에서 줄어든 일자리에 비하면 미미한 수이지만 로봇업계는 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도 많을 것이란 입장이다.



◆의료계에도 부는 비대면



집에 돌아와서는 책상에 스마트폰을 세우고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일주일 전부터 코를 훌쩍거리는데 코로나19로 병원에 가기 꺼려져 원격진료를 예약해둔 터였다.


동네병원이었다면 안내데스크에 간호사가 2명 정도 있고 이들이 접수를 하고 키와 몸무게를 쟀겠지만, 원격진료 앱에서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정해진 시간에 곧바로 진료가 시작됐다. 아이의 상태와 최근 병원방문 이력에 대한 문답이 오간 뒤 의사는 “지금 단계에서 항생제를 먹이는 것보다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청진 없이 화상으로만 진행된 진료는 진찰이라기보다는 의사 삼촌과 화상통화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왕 하는 김에 공황장애를 위해 개발됐다는 챗봇에 말을 걸었다. 머리 기댈 곳만 있으면 시간장소 불문하고 5분 안에 잠드는 체질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불면증이 찾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잠을 못 자겠어요’라고 입력하자 불면에 도움이 된다며 '수면약 말고 공황장애 약부터 드시라, 수면위생 수칙을 지켜라’ 등 4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올 법한 일반적인 이야기였다.원격진료 서비스의 질이 높지 않은 건 이제 겨우 시장이 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코로나19로 원격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때가 때인 만큼 병원진료도 비대면으로 하자는 취지인데, 원격진료가 결국 영리병원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반발도 크다.


200억달러(약 25조원)의 원격의료 시장이 형성된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병원 경영이 악화해 휴직했거나 일자리를 잃은 의료진이 원격의료로 수입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 이천 A병원은 지난달 병원 응급실 의료진 3명을 해고했다. 그중 한 의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가 직격탄이었고, 이런 이유로 해고되는 사례는 내가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의료계도 식당이나 커피숍 같은 일반 서비스업처럼 비대면의 흐름 속에 '사람 직원’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하지만 원격의료라는 새 분야가 생기는 만큼 총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란 주장도 있다. 김재현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은 “원격의료서비스 규제가 풀리면 대면 의료서비스에서 고용은 3.31% 줄지만, 원격 의료서비스에서 5.15% 늘어날 것”이라며 “연간 2000명 정도 고용이 증가하는 효과”라고 전망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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