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잡은 ‘언택트’… 노동의 종말을 고하다 [탐사기획-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운영자 ( 2020.06.02) , 조회수 : 814       ▶▶ 세계일보 (바로가기)

일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일자리가 없어 할 일이 사라지는 세상이 됐다. '언택트’, 리모트 퍼스트, 자동화, 4차 산업혁명….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던 세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했던 기술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을 앞세워 서비스업은 물론 지식노동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 노동은 파편화하고, 전통적 일자리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또는 일자리)은 그동안 얼마나 사라졌고, 또 앞으로 얼마나 사라질까. 코로나19의 '늪’을 벗어나면 사라진 일자리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48만명 줄었다. 코로나19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년 동기가 아니라 코로나19 전과 후로 비교하면 3∼4월 두 달간 무려 102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일자리를 크게 줄인 가장 최근의 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아시아, 유럽으로 빠르게 번졌다. 세계일보가 31일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의 여파가 이어진 2008∼2010년 취업자 수는 11만3000명 줄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일자리가 계속 늘어 2018년에는 10년 전보다 287만명 많아졌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취업난도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다시 금융위기 때로 눈을 돌려보자. 통계청의 '직업별 취업자 수’ 자료를 보면 147개 직업(소분류 기준) 중에서 금융위기 기간(2008∼2010년) 일자리가 줄어든 직업은 49개다. 위기가 지나가고 전체 일자리가 287만개 늘어나는 사이 이 49개 직업에서는 일자리가 84만개 줄었다. 사라진 일자리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직업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보고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경기 침체기(1970·1975·1982년)와 최근 침체기(1991·2001·2009년)를 비교했더니 두 경우 모두 반복·단순작업 위주로 일자리가 줄었다. 하지만 차이는 분명했다. 과거에는 경기가 살아나면 다시 일자리가 회복됐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했다. 위기가 닥치면 기업들이 사람 대신 자동화 기계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도 상점판매원, 자동조립라인 조작원, 목제품 제조 종사원, 제조 관련 단순 종사원 등의 일자리 감소폭이 컸다. 코로나19는 이런 추세에 더해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터졌다.


누구도 내 직업이 30년 뒤 온전하리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첫 출발은 비대면 산업에서 이미 시작됐다. 코로나19가 방아쇠를 당긴 '언택트’ 문화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자리의 미래를 '비대면의 하루’로 풀어봤다.


(중략)


◆의료계에도 부는 비대면


집에 돌아와서는 책상에 스마트폰을 세우고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일주일 전부터 코를 훌쩍거리는데 코로나19로 병원에 가기 꺼려져 원격진료를 예약해둔 터였다.


동네병원이었다면 안내데스크에 간호사가 2명 정도 있고 이들이 접수를 하고 키와 몸무게를 쟀겠지만, 원격진료 앱에서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정해진 시간에 곧바로 진료가 시작됐다. 아이의 상태와 최근 병원방문 이력에 대한 문답이 오간 뒤 의사는 “지금 단계에서 항생제를 먹이는 것보다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청진 없이 화상으로만 진행된 진료는 진찰이라기보다는 의사 삼촌과 화상통화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왕 하는 김에 공황장애를 위해 개발됐다는 챗봇에 말을 걸었다. 머리 기댈 곳만 있으면 시간장소 불문하고 5분 안에 잠드는 체질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불면증이 찾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잠을 못 자겠어요’라고 입력하자 불면에 도움이 된다며 '수면약 말고 공황장애 약부터 드시라, 수면위생 수칙을 지켜라’ 등 4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올 법한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원격진료 서비스의 질이 높지 않은 건 이제 겨우 시장이 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코로나19로 원격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때가 때인 만큼 병원진료도 비대면으로 하자는 취지인데, 원격진료가 결국 영리병원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반발도 크다.



200억달러(약 25조원)의 원격의료 시장이 형성된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병원 경영이 악화해 휴직했거나 일자리를 잃은 의료진이 원격의료로 수입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 이천 A병원은 지난달 병원 응급실 의료진 3명을 해고했다. 그중 한 의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가 직격탄이었고, 이런 이유로 해고되는 사례는 내가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의료계도 식당이나 커피숍 같은 일반 서비스업처럼 비대면의 흐름 속에 '사람 직원’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하지만 원격의료라는 새 분야가 생기는 만큼 총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란 주장도 있다. 김재현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은 “원격의료서비스 규제가 풀리면 대면 의료서비스에서 고용은 3.31% 줄지만, 원격 의료서비스에서 5.15% 늘어날 것”이라며 “연간 2000명 정도 고용이 증가하는 효과”라고 전망했다.



◆별일 없는 미래 vs. 별 일 없는 미래

챗봇과의 허무한 대화를 끝내고, 온라인 서비스거래 마켓에 들어가 '투잡’ 기획안을 올렸다. 프리랜서 마켓인 크몽의 경우 2016년 11월 100억원이었던 누적거래액은 지난해 10월 1000억원을 찍었다. 크몽 관계자는 “등록된 전문가는 23만여명, 이 가운데 320여명이 올해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3382만원) 이상을 번다”고 했다.



서비스 비용을 책정하고, 프로필을 올리다 보니 '투잡 대박’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로부터 3일간, 마켓으로부터 세 번의 메시지를 받았다. '귀하의 서비스가 비승인되었습니다’. 숟가락만 얹으면 밥이 저절로 들어오는 시장인 줄 알았는데 역시 만만한 곳은 없었다.



'비대면의 하루’에는 카운터 직원 대신 키오스크가, 간호사 대신 앱이 있었다. 4차 산업의 파도 속에 우리의 일자리는 별일 없을까, 아니면 별 일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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