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경영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올해 중소기업 경기실적지수의 변화 추이에 따르면 2월부터 4월까지는 지수 값이 상승 곡선을 탔다. 하지만 4월부터 8월까지는 계속 하락했다. 8월 기준 중소기업 경기실적지수는 74.5로 전월 대비 4% 하락했다. 하락이 시작된 시점인 4월과 비교하면 9% 주저앉았다.
중소기업이 처한 대내외 환경도 밝지 않다. 2019년 상반기 중소기업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올해 들어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크게 악화됐다. 이에 하도급 중소기업의 실적도 떨어질 위기로 내몰렸다.
중소기업중앙회가 6월 3일부터 10일까지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기업 경영애로 및 하반기 경영전략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1.8%가 2019년 상반기 경영실적이 2018년 동기 대비 악화됐다고 답했다. 매출이 악화된 기업은 56.4%, 영업이익이 악화된 기업은 58.2%, 자금 사정이 악화된 기업은 56%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의 51.2%는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경영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했다. 올 하반기에 투자를 늘리거나 해외에 진출하는 등 공격적 경영을 할 계획이라고 답한 중소기업은 5.6%에 그쳤다. 신사업 추진·신기술 도입 등 혁신경영에 나서겠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8%에 불과했다. 향후 예상하는 경영상 주요 위험으로는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영향이 51.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근로시간 단축(38.4%)이 그 뒤를 이었다.
경영의 중대 위협 요인
현재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에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내년 1월 1일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적용된다.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로제를 경영의 중대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인력 부족은 가동률 및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고, 이에 납기 지연·납품단가 인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신문이 6월 3일부터 6일까지 내년 주 52시간 근로제 대상 기업 118개사에 '주 52시간 근로제 준비 상황’을 물은 결과, 응답 기업의 65.2%가 '손도 못 대고 있다’고 답했다.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11.9%에 불과했다. 응답 기업의 63.6%는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의 36.4%는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시 가장 우려하는 부분으로 '납품이나 연구개발 일정이 늦춰지는 점’(36.4%)을 꼽았다. 실제 건설산업연구원이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후 대형 건설사가 맡은 공사 109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건설 공사의 약 44%가 공기 연장 위기에 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기술(IT) 업계 사정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후) 국내 게임사 개발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귀띔했다. 모 중견 게임회사는 올 상반기 공개를 목표로 했던 모바일 게임의 출시 시점을 연기했다. 해당 기업의 매출은 지난해 1분기 4752억 원에서 올 1분기 3588억 원으로 24.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38억 원에서 795억 원으로 61% 급락했다. 게임회사 성장의 원동력인 신작이 부재한 탓이다.
앞선 한국경제신문 조사에 따르면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점’(33.1%)도 중소기업이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시 우려하는 대목으로 나타났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초과근무수당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미 경기지역 버스업계에서는 이를 보전해달라면서 임금인상 요구가 표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경기지역 버스요금이 인상됐다.
국토교통부는 버스업계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2021년 7월까지 신규 채용해야 하는 운전기사가 1만5000여 명에 달하며, 이로 인해 추가되는 인건비가 약 7300억 원이 되리라 추산한 바 있다.
(중략)
현장이 절실히 요구하는 대책
중소기업계는 9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중소기업인 고용노동정책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1년 이상 유예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생산 차질 등 중소기업이 감당키 힘든 부분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경제 상황, 중소기업 준비 상황 등을 고려해 도입 시기를 유예하고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주요 국가 수준으로 다양한 유연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1년 만이라도 유예하면 대내외 경기 악화와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게 중기중앙회 주장이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인력 부족률이 2.1배나 높다.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상황에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초과근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정대로 단축 근무제를 실시할 경우 타격이 적잖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계는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 등 현실적 보완책도 요구하고 있다. 4월 3일 '탄력근무제 도입의 경제적 효과’ 국회 토론회에서 김경만 중기중앙회 본부장은 “중소기업 중 성수기가 뚜렷한 사업은 성수기 지속 기간이 5~6개월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6개월로는 부족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앞선 한국경제신문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53.7%가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기업 대표는 “탄력근로 기간이 너무 짧아 주문이 몰리면 납기를 맞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필자가 속한 파이터치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탄력근무제 없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시행 전과 비교해 연간 일자리 약 40만1000개, 국내총생산(GDP) 약 10조7000억 원, 기업 수 약 7만7000개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감소는 노동 공급 감소와 임금 상승에 따른 결과다. 일자리는 숙련공 일자리와 비숙련공 일자리로 구분할 수 있다. 숙련공 일자리가 줄어드는 까닭은 단기간에 신규 고용으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숙련공 일자리 감소는 자동화에 의해 기계로 대체되는 데서 기인한다.
GDP 감소는 일자리 감소가 생산 감소로 이어져 나타난 결과다. 기업 수 감소는 숙련공의 근로시간 단축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 시 숙련공 의존도가 높아 기존 업무를 대체할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는 기업은 과업을 줄이고 숙련공 일부를 해고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이때 규모가 작은 기업은 직원 감축 후 사업 운영이 어려워 폐업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거시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Lucas·1978)와 자동화 분야의 권위자 데이비드 아우터, 데이비드 돈(Autor and Dorn·2013)의 구조를 반영한 동태일반균형모형을 통해 분석한 결과다.
같은 연구 방법을 통해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결과,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이 길어질수록 주 52시간 근로제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3개월로 적용하면 앞선 일자리·GDP·기업 수 기준에서 일자리 12만 개, GDP 2조6000억 원, 기업 2만3000개를 보호할 수 있다. 경사노위 합의안에 따라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일자리 19만6000개, GDP 4조8000억 원, 기업 3만8000개를 지킬 수 있다.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단위기간 1년을 적용하면 일자리 28만7000개, GDP 7조4000억 원, 기업 5만5000개를 사수할 수 있다. 즉, 단위기간을 1년으로 설정해야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효과는 중소기업에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벼랑 끝의 중소기업
일본의 수출 규제와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중소기업의 경영 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로제를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확대하면 중소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중소기업이 주체가 된 혁신성장을 반복해 강조해왔다. 중소기업의 혁신이 가능하려면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주 52시간 근로제 유예와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 등 현장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대책을 정부가 조속히 마련해야 할 때다.
신동아 2019년 11월호
김재현 (재)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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